관청피해자모임, ‘권순일 여죄수사와 구속기소’ 등 촉구하며 대법원규탄

피해자들, “국회가 법관탄핵과 유신무효선언 등 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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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문 기자
기사입력 2020-05-16 [13:18]

 

  <인뉴스TV/박기문 기자>

 

 <인뉴스TV/박기문 기자>

 

지난 5월 13일(수요일)은 종신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가 45년 전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이하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발동한 날이었다. 이를 기억하는 정치적, 사회적 행사는 하나도 없었다. 역사 속 과거에 파묻혀 그냥 지나갈 뻔 했던 바로 이날 오후 2시부터 약 1시간 동안 대검찰청 앞에서 관청피해자모임(이하 관피모)이라는 이름으로 다음(Daum)에 개설된 카페에서 관청피해 관련 정보와 의견 등을 교환하던 약 8천 700여명에 달하는 회원 중 14인과 민주시민단체 소속 활동가 3인 및 자원봉사자 2인 등 모두 19인이 모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관피모라는 자기단체 역사상 최초로 독자적인 기자회견까지 단독으로 주최하게 된 것은 카페창설자 겸 카페지기 구수회 공동대표와 최대연 수석회장을 포함하여 김진용, 황용구, 여광은, 이승원, 장영호 등 공동대표단과 김세중, 홍기정, 유미자 등 전·현직 회장단 및 이동순, 강명숙, 김병권, 최오덕 등 열성회원이 뜻을 하나로 모아냈기 때문이다. 즉, 이들 모두는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권이 유린된 억울한 피해자가 600만 명에 달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하여 기자회견장은 피해사례 보고대회장과 같게 뜨거운 기운으로 달궈졌고, 각각 서로 다른 절박하고도 부당한 사연이 발표될 때마다 함께 분노하고 절규하며 공감했다.

 

예컨대, 최대연 수석회장은 “2014년 1월 3일 함께 걸어가던 일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령자 김 모(謀)씨는 녹색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가다 사고가 났다고 대법원 민사 2부가 최종판결하여 배상을 받았다. 당시 40대 초반으로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였던 본인은 중환자실 장기입원과 71% 영구장애 및 물리치료 등에 기인하여 재판이 약 6개월 늦게 시작되었을 뿐, 배상청구액은 오히려 더 컸다. 위 고령사망자 1인을 담당했던 재판부와 동일한 대법원 민사 2부에 배당되어 그 명령에 따라 보정서도 제출하는 등 재판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최대연 수석회장은 “원심판결은 원고인 내가 적색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가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조작된 증거에 따라 잘못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취지로 작성한 상고이유서를 제출기간인 20일이 경과되기 며칠 전 제출했고, 심리기일연기도 함께 신청했다. 하지만, 내가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그 날 심리 불속행으로 상고는 기각되었다. 피고는 상고이유서도 전달받지 못했고, 읽어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또한 제출기간인 10일 이내에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은 권순일 대법관이 상고이유서를 꼼꼼하게 살펴보기는커녕 불법으로 개입하여 자신이 주심인 대법원 민사 3부로 사건배당을 조작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즉, 원고가 상고이유서를 제출해야만 하는 기간인 20일이 경과하기도 전에 심리 불속행 기각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또, 이처럼 무리하게 기각처분을 내린 것은 권순일 대법관이 피고변호사와 고교는 물론 서울대 선·후배지간이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동일한 교통사고인데도 대법원 판결이 서로 틀리다. 제대로 배상받지 못한 나는 5천만 원이 없어서 현재 6·7·8차 수술도 받지 못하고 있고, 자녀는 4년제 대학교를 다니다가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 결국 제적당했다. 사법농단이 폭로되기 시작하던 2년 전(2018년) 5월 30일 비교적 일찍이 관피모 공동대표단 등과 함께 이에 연루된 양승태, 권순일, 임종헌 등 고위직판사 8명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고발했다. 이중에서도 특히 권순일 대법관에게는 사법농단 공범혐의 이외에도 배당조작 등 혐의를 추가했다. 하지만, 마이통풍이었다.”고 개탄했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최 회장은 “그동안 검찰은 물론 법무부 장관, 국가인권위, 청와대 등 9차례나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비로소 전화로 2회에 걸쳐 요식적이나마 고발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기소사유서만 받을 수 있었다. 이에 항고했고, 다시 각하되자 대검찰청에 재항고했다. 이와 함께 국민신문고를 통해 대검찰청 검찰수사 심의위원회 소집신청서를 4월 22일 제출했다. 현재 대검찰청 정책 기획과에서 검사가 심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대연 회장은 항고가 진행 중이었던 금년 3월 12일 서울고등검찰청 최영운 검사를 면담했다면서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공개했다.  

 

 ▲ 최대연 사건은 민사 3부 주심 권순일 대법관이 전관예우에 의한 법원조직법을 위반하여 배당조작 등 불법행위로 민사 2부가 담당했던 사건을 인수한 사건이다.

 

 ▲ 민사 2부가 최대연이 상고한 교통사고보험 관련 3개 사건 중 2개 사건을 패소로 판결하여 극도로 불신감을 갖게 된 원고가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상고사건에서 비록 민사 2부 재판부 및 그 소속 대법관 전원에 대한 기피신청을 2차례에 걸쳐 제기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민사 3부가 기피신청을 기각시켰고, 원고가 민사 2부로부터 인지대 571만원 납부와 보정서 제출 등 보정명령을 받아 이를 모두 이행한 상태였기에 민사 2부가 계속 심리해야 마땅하다.

 

 ▲ 민사 3부가 기피신청을 기각시켰으면, 형사소송법 제41조에 의하여 기피신청 2건 판결문 정본에 권순일 대법관 서명이 이루어지고 직인도 날인되어 있어야만 마땅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최대연 본안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383조 1항에 따라 법적으로 원천무효다. 따라서, 권순일 대법관 배당조작 범죄혐의는 100프로 입증된다.

 

 ▲ 상고이유서 제출기간 20일 및 피고답변서 제출기간 10일 등 30일이 모두 경과한 이후에 비로소 주심대법관이 배당되어야 맞는데 민사 3부 주심 권순일은 배당조작으로 불법 관여하여 담당재판부를 3부로 변경시키고, 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인 20일도 지나지도 않았는데 심리 불속행으로 기각시켰다. 이는 ‘범죄행위’에 해당된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수사하여 처벌받도록 하겠다.  

 

최영운 검사가 위와 같이 발언했다고 주장하면서 최대연 회장은 “민사소송법 제427조에 상고이유서를 20일 안에 제출하고 동법 제428조 2항에는 피고가 10일 안에 답변서를 제출한 후 배당하여 주심대법관을 결정한다는 취지가 명기되어있다. 이는 대법원 사건 배당에 관한 내규 제5조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 조사단 3차 보고서 134쪽(원세훈 국정원장 관련) 에도 명기되어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과거 직장에서 담당했던 업무상 또 관피모 회원을 위한 고발사건 등 100건을 조회할 경우, 나 자신이 피해자인 교통사고사건만 권순일 대법관이 배당조작이라는 범죄행위로 불법배당을 했다. 이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등 범죄행위가 틀림없다. 그럼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근무할 때 특수부를 총괄하면서 법적 판단이 아닌 정무적인 판단으로 권순일 대법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판력을 이유로 항고마저 각하시켰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양승태와 임종헌은 구속 수사하고, 권순일 대법관에 대하여는 정무적 판단으로 기소도 안하고 사건을 종결한 것은 헌법 제11조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며, 위법 부당하다.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법무부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치적, 정무적 판단을 철회하고 법적으로 판단하여 양승태 공소장의 공범 권순일 대법관을 구속 수사하라는 령을 하달하라”고 촉구했다.

 

관피모 김진용 공동대표 역시 또 다른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다. 김진용 공동대표는 약 21년간 성실하게 육군 장교로 복무한 후 2013년 후반기 군인명예전역시행계획에 따라 같은 해 4월 30일 육군참모총장에게 명예전역을 신청했다. 또, 명예전역 관련 전직교육 신청자로서 같은 해 4월 1일부터 이미 전직교육이수 등 전역절차를 밟고 있었다.

 

“2013년 6월 25일경 육군 명예전역심사위원회 간사에게 명예전역선발결과를 전화로 문의했다. 그러자 2013년 6월 17일 이미 명예전역 비선처분으로 분류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명예전역 비선처분이 무엇인가도 정확하게 몰랐다. 나중에야 정확하게 알게 된 그 의미는 예산이 부족해서 명예전역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자의로 전역을 희망한 것처럼 꾸며서 군복을 벗긴다는 것이었다. 이에 불복하여 2013년 6월 28일 경 국방부를 상대로 명예전역 비선처분사유도 알 수 없고, 명예전역 비선처분 자체가 부당하다고 인사소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기각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다(2013년 11월 15일  서울행정법원 사건 2013구합28152 등).  하지만, 현재까지 잘못된 사실관계와 부당한 법리 등에 기인하여 연이어 기각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행정소송도중인 2013년 11월 30일 전역되었다. 즉,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육군과 국방부는 그 당시 현역소령 중 유일하게 김진용에 대해서만 20년 미만 중장기복무자들에게 적용하는 일반전역 또는 희망전역 등에 해당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사기를 쳐서 명예전역수당도 지급하지 않고 사기를 쳐서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처럼 전역시켰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자의에 반하여 강제로 전역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명예전역 신청을 무효로 하고, 정년까지 계속 복무하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했다.”고 절규했다.  

 

 “내가 사기를 당해 전역당한 이후 소송을 제기하자 육군 및 국방부는 뒤늦게 관련 명령을 정정하거나 관련 법규와 시행계획 등을 비공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즉, 증거를 위조하고 왜곡하거나 은폐 또는 은닉하는 범죄마저 저질렀다. 실정을 제대로 모르는 대법원은 육군 및 국방부가 제시하는 허위증거만 믿고 원고에게 패소판결을 내려 현재까지 다툼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 명예전역시행계획 시행문 등 시행계획일체, 김진용 명예전역신청 문건 일체 등 비공개 공문서는 2019.3.4. 육군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했다. 비로소 과거 육군 및 국방부가 제출한 사실 관련 문서가 허위로 조작되었고, 김진용은 명예전역비선 처분대상자(예산부족으로 수당지급 불가능)에 해당하여 전역신청 자체를 무효로 처리한 후 계속복무권리자에 해당한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증거와 새로운 사실관계 등에 근거하여 기존 사실관계와 기존법리가 각각 중대한 허위 또는 명백한 잘못임을 입증하고자 지난 해(2019년) 12월 5일 그 당시 육군과 국방부 등에 근무하던 전역처분관련 불법행위 실무자들을 형사고발했다. 청와대에 수사촉구서를, 대검찰청에는 고발고소장을 국방부 검찰단에도 고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일부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사유에 기초하여 국방부에 인사소청도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각각 밝힌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달랐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대검찰청 정책기획과 검찰수사 심의위원회 소집신청서를 인용하여 권순일 대법관을 구속 수사하라!’는 현수막과 ‘권순일 대법관을 구속 수사하라’는 손 팻말 등이 함축하고 있듯이 공권력에 대한 최후심판자인 사법부를 규탄하면서 강한 불신과 적대감을 숨기지 않은 것이었다.  

 

한편, (사)긴급조치사람들 이대수 사무처장은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국가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주도한 대법관이 권순일이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대법원 정문 앞에서 권순일 사퇴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국회가 사법농단연루 법관을 탄핵하고 유신무효를 선언해야만 유신청산이 가능하다. 조만간 긴급조치피해자들이 앞장서서 국민과 함께 이 운동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관피모는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이하 촛불계승연대)에 가입한 100여개 단체 중 하나로서 사법적폐청산 선봉단체임을 자임하고 있다. 촛불계승연대 송운학 상임대표는 ‘여는 말씀’에서 “관피모와는 사법농단 주범 양승태 등 구속촉구투쟁을 함께 했다. 그 인연이 이어져 관피모는 촛불계승연대에 가입했고, 가입단체 자격으로 관피모가 강력하게 요청하여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거듭된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드리고자 기자회견 진행사회를 맡게 되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송운학 상임대표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국민적 여망인 사법개혁에 적임자가 아니다. 사법농단 공범인 권순일 대법관을 사퇴시키지도 못했고,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가장 많은 패소를 남긴 노태악 판사를 대법관으로 추천했다. 사법적폐청산 또는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재판소원제도 도입, 검경과 법원 등 사법권력 관련 최고기관장 및 지역기관장 등에 대한 단계적 직선제 도입, 수사·구속·기소·심리·판결·인사 등 사법철차 각 단계별로 검경은 물론 법관과 대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민간인참여보장(국민 참심원제도 확립)”이라고 주장했다.

 

민생·사법적폐 퇴출행동 권영길 대표는 “법관탄핵과 유신무효선언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법피해자 등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 등에 기인하여 발생하는 국민피해, 인권유린과 훼손 등을 구제하거나 방지하기 어렵다. 재판소원제를 확립하기 위해 힘을 모을 때”라고 역설했다.

 

이날 기자회견 중 상당부분은 법피아TV 박두혁 유튜버 방송인 겸 영화감독이 생중계했고, 실명공개를 원치 않는 자칭 ‘디카 도사’ 등이 사진촬영을 담당했다. 다만, 긴급조치 피해자로서 양승태, 권순일, 임종헌 등 사법농단 연루판사 공동고발인에 추가로 합류한(2019년) 동학마당 조봉훈 공동대표는 부득이한 사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했다. 또,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관피모 장영호 공동대표 등은 謀(모) 언론사를 상대로 하는 취재일정 협의 문제로 구체적인 사연을 증언하지 못했다. 소결

 

       [긴급조치 제9호 발동 45주년에 바라본 피해자 중심 사법개혁운동 가능성]

 

유신시대 군부와 정보기관이 주도한 인권유린 후유증이 몰려있는 곳은?

악성종양이 전이된 듯 검경·법원 등 사법부가 인권유린 주범 또는 공범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과거사 바로잡고, 유신잔재 등 깨끗하게 청산해야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비방·반대·개정주장 및 긴급조치 9호에 대한 비방 등을 금지하고 엄벌하는 것으로서 45년 전인 1975년 5월 13일 발동되었다. 오늘날에는 독재자 박정희가 74년부터 75년 사이에 잇달아 발동한 긴급조치, 이중에서도 특히 제1호와 제2호 및 제4호 그리고 제9호가 각각 아무런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인 명령이자 위법적인 지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2010년 12월 16일 역사상 최초로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뒤를 이어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 역시 긴급조치 제1호와 제2호 및 제9호가 각각 위헌이라고 심판했다. 마지막으로 긴급조치 제4호가 위헌이라는 판결은 2013년 5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부가 내렸다. 즉,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는 현행헌법뿐만 아니라 유신헌법에 비추어 볼 때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입법부인 국회에서 개폐 등에 관한 아무런 권한과 논의가 없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절차상으로도 위헌일 뿐만 아니라 사법심사권을 배제하는 등 국민이 행사해야 마땅한 각종 기본권을 아무런 긴급한 사유도 없이 지나치게 제한했다는 점에서도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긴급조치는 선포 당일부터 즉각 시행되어 불법체포구금, 강제연행, 반인권적 고문 등을 자행함으로써 절대다수 국민에게 침묵과 복종만을 강제했던 실로 무서운 독재수단 중 하나였다. 특히, 긴급조치 9호는 박정희가 피살된 이후에도 사문화되었을 뿐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유지되다가 유신헌법이 개정된 1980년 10월 27일에야 비로소 헌법적 근거를 잃고 사실상 폐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절 사법부는 합헌과 합법을 가장하고 반인권적 폭압을 일삼은 유신체제에 저항하여 민주공화국이라는 헌정질서와 법치주의 및 인권을 수호하기는커녕 스스로 박정희 독재를 정당화시켜주는 시녀로 전락했다. 미래가 촉망되던 청년학생들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앞장서서 민주국민과 함께 유신독재에 저항했다. 긴급조치 1호와 4호에 맞서다 구속·기소된 민청학련사건 등 피해자 최소 200여명을 제외해도 9호 피해자만 약 1천 14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당시 헌정유린과 인권유린을 자행한 독재기구는 군부와 정보기관이었다. 하지만, 악성종양이 남긴 후유증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할 경우 암세포가 독버섯처럼 퍼져나가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듯 오늘날에는 검경과 법원 등 사법부가 책임을 져야만 하는 각종 인권유린이 심각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긴급조치 제9호가 발동된 제45주년에 해당되던 지난 5월 13일 오후 2시부터 약 1시간 동안 대검찰청 앞에서 사법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권순일 대법관 재기수사와 여죄수사 및 기소 등 촉구’ 기자회견이었다.

 

온라인 소통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관피모가 오프라인으로 진출하여 양승태, 권순일, 임종헌 등 사법농단 연루판사 8명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고발한 것은 2년 전이었던 2018년 5월 30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몇몇 민주시민단체와 2년 동안 사안별로 연대협력하면서 지난해에는 촛불계승연대에 가입하여 공고한 상호연대로 피해자 중심 사법개혁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유신시대 긴급조치 연표)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시행 1974. 1. 8.]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1974. 1. 8., 제정]

 

대통령 긴급조치 제2호 [시행 1974. 1. 8.] [대통령 긴급조치 제2호, 1974. 1. 8., 제정]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시행 1974. 1. 14.]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 1974. 1. 14., 제정]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 [시행 1974. 4. 3.]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 1974. 4. 3., 제정]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와 동 제4호의 해제에 관한 긴급조치 [시행 1974. 8. 23.] [대통령 긴급조치 제5호, 1974. 8. 23., 제정]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의 해제조치 [시행 1975. 1. 1.] [대통령 긴급조치 제6호, 1974. 12. 31., 제정]  

 

대통령 긴급조치 제7호 [시행 1975. 4. 8.] [고려대학교 휴교 명령, 1975. 4. 8., 제정]  

 

대통령 긴급조치 제7호의 해제조치 [시행1975. 5. 13.] [대통령 긴급조치 제8호, 1975. 5. 13., 제정]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시행1975. 5. 13.]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1975. 5. 13., 제정]. 

 

<박기문 기자/erunses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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